솔직히 처음 고영테크놀로지를 알게 됐을 때, 저는 "코스닥에 이런 회사가 있었어?" 하고 좀 멍했습니다. 반도체 검사 장비 시장에서 세계 점유율 50%를 넘긴다는데, 삼성이나 TSMC 이름은 들어봐도 이 회사 이름은 생소했거든요. 그러다 이 회사의 창업 스토리와 기술 궤적을 따라가다 보니, 단순한 장비 주식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일본이 지배하던 시장에서 룰을 바꾼 창업 스토리
일반적으로 세계 1위 기업이라고 하면 독일이나 일본 회사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영을 파고들면서 가장 먼저 놀란 건 이 회사의 시작이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창업자 고광일 대표는 1983년 금성사(현 LG전자) 로봇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당시 일본 로봇은 매끄럽게 돌아가는데 한국 것은 소음이 났다고 합니다. 제어 공학을 전공한 그가 일본에 번번이 밀리며 쌓인 응어리를 안고 2002년, 45세에 창업을 결심합니다.
이게 제 경험상 굉장히 낯선 창업 방식이었습니다. 보통 창업은 만들 제품을 먼저 정하잖아요. 고광일 대표는 달랐습니다. 영업 사원부터 채용해 6개월 동안 삼성, LG 생산 현장을 직접 돌아다녔습니다.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들린 말이 있었습니다. "납이 얼마나 쌓였는지, 2D 장비로는 잡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SPI(Solder Paste Inspection)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SPI란 PCB(인쇄회로기판) 위에 납이 올바른 위치에 적정량으로 도포됐는지 검사하는 공정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기존 2차원 방식으로는 납의 '높이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고, 고광일 대표는 로봇 연구 시절 쌓은 3차원 광학 기술을 이 지점에 연결했습니다. 2003년, 세계 최초 3D SPI가 출시됩니다.
지멘스 엔지니어들을 침묵시킨 3차원 광학 기술
제가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독일 전시회에서 지멘스 엔지니어들이 고영의 장비를 처음 봤을 때 반응이 "데이터 조작 아니냐"였다는 겁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들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 정밀도를 한국 벤처가 들고 나타난 거니까요.
지멘스가 내준 테스트는 말 그대로 지옥이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미세하게 기울어진 납, 살짝 부족한 납, 옆으로 번진 납을 기판에 심어두었습니다. 기존 2차원 장비는 위에서 사진을 찍는 방식이라 가로세로 위치만 확인할 수 있고, 납의 높이는 볼 수 없습니다. 이 기판을 2차원 장비에 넣으면 멀쩡해 보입니다.
고영의 3D SPI에 같은 기판을 넣자 결과가 달랐습니다. 기울어진 납이 입체적으로 드러나고, 높이가 기준치 이하인 부분이 정확히 검출됐습니다. AOI(Automated Optical Inspection)라는 개념도 이 흐름에서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AOI란 납 도포 이후 실제 부품이 제대로 장착됐는지를 광학적으로 자동 검사하는 공정입니다. 고영은 이 AOI 역시 세계 최초로 3차원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결정적인 기술 차별점은 그림자 보정이었습니다. 빛을 위에서 비추면 부품 옆에 그림자가 생기고, 그 사각지대에 숨은 불량은 기존 방식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고영은 여러 각도에서 빛을 쏘고 그림자를 보정하는 기술을 독자 개발해 이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지멘스 엔지니어들이 일부러 그림자 사각지대에 심어둔 불량까지 전부 잡아냈고, 결국 지멘스 암베르크 스마트 공장에 고영 장비가 들어가게 됩니다. 이 소식 하나로 별도 마케팅 없이 캐논, 콘티넨탈, 덴소 등 글로벌 대형 고객사들이 줄을 섰습니다.
현재 고영의 전 세계 고객사는 3,400여 개에 달합니다. SMT(Surface Mount Technology) 검사 시장 전체에서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고, SPI 단독 점유율은 50%를 넘습니다.
AI 반도체 시대에 다시 한번 '먼저 들어간' 이유
고영이 단순히 잘 만든 회사라는 인식은 사실 맞는 말이지만, 지금 주목받는 이유는 좀 다릅니다. AI 반도체 시대가 열리면서 고영이 쌓아온 기술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구조가 됐기 때문입니다.
HBM(High Bandwidth Memory)이라는 용어가 요즘 많이 들립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전송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고성능 메모리로, AI 연산에 필수적인 부품입니다. 이 HBM을 생산하는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정에서는 웨이퍼 위의 수많은 범프(bump, 칩 연결용 미세 돌기)를 3차원으로 정밀 검사해야 합니다. 2차원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제가 보기에 고영의 진짜 강점은 이 시점에 이미 수십 년의 3차원 광학 측정 노하우가 쌓여 있다는 점입니다. 경쟁사들이 지금 3D 기술을 따라오려 해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영은 2024년 말 글로벌 파운드리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양산 라인에 신규 3D 검사 장비를 납품했고, 2025년에는 북미 AI 서버 인프라 기업과 약 34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계약 규모는 고영 연 매출의 약 17%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다만 여기서 냉정하게 볼 부분도 있습니다. 반도체 업황에 따른 실적 변동이 크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2023년 상반기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약 60% 급감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AI 수요가 다운사이클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건 여전히 지켜봐야 할 변수입니다.
투자 관점에서 현재 고영을 판단할 때 확인해야 할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AI 서버 및 HBM 관련 신규 수주 속도
- 카이메로의 미국 실제 판매 대수 및 일본 시장 진입 시기
- 반도체 업황 사이클 상 현재 위치
- 연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현재 20% 이상 유지 중)
3D 광학 기술이 뇌수술 로봇이 된 사연
이 부분이 솔직히 제가 가장 예상 밖이라고 느낀 지점입니다. 반도체 검사 장비 회사가 뇌수술 로봇을 만들었다는 게 처음에는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렸거든요. 그런데 기술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연결 고리가 명확합니다.
고영의 3차원 광학 기술이 하는 일의 핵심은 결국 '3차원 공간에서 정확한 좌표를 잡는 것'입니다. PCB 위 납의 위치를 머리카락 100분의 1 단위로 잡는 기술이 뇌 속 목표 지점의 좌표를 잡는 데도 적용됩니다. 수술 중 환자가 미세하게 움직여도 광학 센서가 위치를 실시간 추적합니다.
고영의 뇌수술 로봇 카이메로(Kaimero)는 2011년 산업통상자원부 국책 과제로 개발을 시작해 2019년 식품의약품안전처 제조 및 판매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세브란스 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 현재 국내 10개 병원에 공급됐고 누적 수술 500건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2025년 1월, 고영은 미국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 승인을 받습니다. FDA 승인이란 미국 식품의약국이 해당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공식 인정했다는 의미로, 미국 의료 시장 진입을 위한 가장 높은 장벽입니다. 개발 시작부터 승인까지 14년이 걸렸습니다. 국내 로봇 기업 중 뇌수술 분야에서 FDA 인증을 받은 것은 고영이 처음입니다.
미국에서는 지니언트 크레니얼(Geniant Cranial)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며, 대당 가격은 약 14억 원(100만 달러)입니다. 2025년 기준 전 세계 의료 로봇 시장 규모는 약 17조 원으로, 북미가 62%를 차지합니다. 고영이 우선 공략하는 미국 상급 병원만 301개입니다. 카이메로와 경쟁하는 미국 제품들이 산업용 로봇 기반의 크고 무거운 구조인 반면, 카이메로는 침대 직접 부착형 소형 광학 센서 기반이라 수술실 환경 제약이 적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입니다.
일본 후생노동성 인허가도 막바지 단계라고 알려져 있어, 미국과 일본 두 시장에서 동시에 매출이 발생하는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고영의 사업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영은 단기 테마로 묶이기에는 기술의 깊이가 다른 회사입니다. 다만 어떤 종목이든 실적 숫자가 따라와야 주가는 움직입니다. AI 반도체 검사 수주가 실제 매출로 연결되는 속도, 카이메로의 미국 판매 첫 실적이 언제 나오는지가 지금 고영을 지켜보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분기 실적 발표와 수주 공시를 꾸준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14WKZ4rbK4